작품명
: [위인전] 에디슨 Part I (Thomas Alva Edison)
1847년 2월 11일 오하이오주(州) 밀란에서 태어났다.
특허수가 1,000종을 넘어 ‘발명왕’이라 불리고 있다.
제재소를 경영하던 아버지 새뮤엘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1854년 미시간주 포트휴런으로 이사를 가 그곳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나,
산만한 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3개월 뒤부터 그의 어머니가 집에서 그를 가르쳤다.
집안이 가난하였기 때문에 12세 때 철도에서 신문·과자 등을 팔면서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화물차 안으로 실험실을 옮겨 실험에 열중하였다.
신문을 팔던 어느 해 기차 실험실 안에서 화재를 일으켜 차장에게 얻어맞은 것이 귀에 청각장애를 일으키게 되었고,
그후부터는 사람들과의 교제도 끊고 연구에만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패러데이의 《전기학의 실험적 연구》라는 책을 읽고 그 책의 설명이 복잡한 수식(數式)을 쓰고 있지 않은 데에 많은 흥미를 느꼈으며, 그 책에 나오는 실험을 연구하다가 1868년에 전기 투표기록기(投票記錄機)를 발명하여 최초의 특허를 받았다.
이어서 다음해에는 주식상장표시기(株式上場表示機) 등을 발명하였고
그 발명으로 얻은 자금을 기반으로 뉴저지주의 뉴어크에 공장을 세웠다.
그는 1876년에 멘로파크로, 1887년에는 웨스트오렌지로 연구소를 옮겼다.
이들 실험소에서 1871년에 인자전신기(印字電信機), 1872년에 이중전신기, 1876년에 탄소전화기,
1877년에 축음기, 1879년에 백열전구, 1891년에 영화 촬영기·영사기, 1891~1900년에 자기선광법(磁氣選鑛法), 1
900~1910년에 에디슨 축전기 등을 계속 발명했다.
그는 전구를 보급하기 위하여 소켓·스위치·안전퓨즈·적산전력계(積算電力計)·배전방식 등을 고안하고,
효율이 높은 발전기와 배전반(配電盤)의 설계 등, 전등의 부대설비에서 배전·충전·발전에 이르기까지의 전 기기체계(機器體系)를 창조해 냈다.
1882년에는 세계 최초의 중앙발전소와 에디슨 전기회사가 창립되었다.
그리고 1883년에 그가 전구실험 중에 발견한 ‘에디슨 효과’는 20세기에 들어와 열전자 현상으로서 연구되고,
진공관에 응용되어 그후의 전자공업 발달의 바탕이 되었다.
그는 대학의 강의를 경멸하였다.
보통 교육에 대해서도 “현재의 시스템은, 두뇌를 하나의 틀에 맞추어 가고 있다.
독창적인 사고를 길러내지는 못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다”라고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천재란 99%가 땀이며, 나머지 1%가 영감이다”라는 말은, 일생을 통한 그의 유명한 모토였다.
이것은 만년의 술회(述懷), “나는 발명을 계속하기 위한 돈을 얻기 위하여 언제나 발명을 한다”는 말과 더불어
끊임없이 연구와 창조를 계속한 끈질긴 그의 발명가 정신을 단적으로 상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