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 [연설문] 오프라 윈프리 『Your truth is the most powerful tool』 (Oprah Winfrey)
시대가 바뀌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차별이 없어지고 있다.
인간은 동등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의 정도에 따라서, 배경에 따라서 혹은 성별에 따라서 직간접적인 차별이
자행되어 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야 사회 각층에서 미투 열풍이 일어나고 성범죄들이 강력하게 처벌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성범죄로 인한 한 여성의 아픔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릴 만큼 아주 큰 슬픔이다.
감추고 싶었을 어린 시절의 고통을 밝혔던 오프라 윈프리.
그녀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마음의 목소리가 그대로 연설문에 담겨있다.
“모든 가치들 중 공유하고 싶은 하나는 가장 칠흙 같은 밤을 경험하면서도 밝은 아침을 올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 능력입니다.”
인생을 살아다보면 누구나 고난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끔찍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어쩌면 미래가 있다는 희망 때문인 것은 아닐까?
힘들었던 과거를 이겨내고 굵직한 성공을 이끌어낸 그녀가 우리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들어보자.
지은이(편저) :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
오프라 윈프리는 시골인 미시시피주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6세 때 위스콘신주 밀워키로 이주하여 자라온 그녀는
어린 시절 상당한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녀는 9살에 사촌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으며 14살에 미혼모가 되었으나
그녀의 아들이 2주 후에 죽는 고통을 겪었다.
그녀는 고등학생 때 라디오 프로에서 일을 얻었고 19살에 지역의 저녁 뉴스의 공동뉴스캐스터를 시작했다.
그녀의 즉흥적 감정 전달 덕분에 그녀의 활동무대는 낮 시간대의 토크쇼로 옮겨졌다. 그 이름은 이제는 유명해진
‘오프라 윈프리쇼’였다.
1983년 오프라 윈프리는 시카고에서 낮은 시청률을 가진 30분짜리 아침 토크쇼인 에이엠 시카고(AM Chicago)의 진행자가 되었다.
오프라 윈프리가 맡게 된 지 한 달 후 그녀는 시카고에서 가장 인기있는 토크쇼, 도나휴를 능가하게 만들었다.
그 쇼는 전국적으로 방영되는 '오프라 윈프리 쇼'로 바뀌었다. 그녀는 친숙한 고백적 형태의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낸 것으로 인기를 얻어 토크쇼 장르를 대중화시키고 큰 변화를 일으켰다.
오프라 윈프리는 20세기의 가장 부자인 흑인계 미국인으로 꼽혔고, 미국의 상위 자산가들 중 첫 번째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며
세계에서 유일한 흑인 억만장자이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도 불린다.